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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울릉 앞바다에 침몰한 러시아 순양함 돈스코이호가 113년 만에 발견됐다. 그동안 돈스코이호에 수백조원 가치의 금화와 금괴가 실려 있다는 소문이 나돌아 선체 발견으로 향후 보물 존재 여부가 관심을 끌고 있다고 한다.


신일그룹은 지난 15일 오전 9시 50분께 울릉군 울릉읍 저동리에서 1.3㎞ 떨어진 수심 434m 지점에서 돈스코이호 선체를 발견했다고 17일 밝혔다.


돈스코이호 탐사를 준비해 온 신일그룹 탐사팀은 지난 14일 침몰 추정해역에 유인잠수정 2대를 투입해 돈스코이호로 추정되는 선박을 발견했다.


이어 고해상도 영상카메라로 장착된 포와 선체를 돈스코이호 설계도와 비교해 100% 동일한 것을 확인했다. 15일과 16일에 이어진 재탐사를 통해 15일 오전 9시 48분 함미에서 'DONSKOII'(돈스코이)라고 선명하게 적혀있는 함명을 발견하고 촬영했다.


(사진) 돈스코이 호의 선체


(사진) 돈스코이 호의 갑판


명확한 선명뿐 아니라 203mm 대포와 152mm 장거리포, 다수 기관총, 앵커, 연돌 2개, 마스트 3개, 나무로 만든 데크와 철갑으로 만든 좌우현 선측 등이 계속 확인됐다.


돈스코이호는 뱃머리가 430m 지점에 걸려있고 뒷부분이 380m 수심에서 수면을 향해 있다. 포격을 당해 선체가 심하게 훼손돼 함미 부분은 거의 깨져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선체의 상갑판은 나무로 되어 있어 거의 훼손 되지 않았고 선체 측면의 철갑 또한 잘 보존돼 있다고 신일그룹 측은 밝혔다.


(사진) 선체 훼손이 심한 상태이다.


이 배에는 현재 가치로 약 150조원의 금화와 금괴 약 5천500상자(200여t)이 실려 있다는 소문이 오래전부터 돌았다. 그 예로 2000년대에 지금은 법정관리 후 회생한 동아건설산업이 배를 발견하였고, 이후 순양함에 실린 막대한 군자금 이야기로 유명해졌다. 


그러나 현재까지 이 배에 금화와 금괴가 실려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신일그룹 관계자는 "이번 발견으로 돈스코이호 존재와 침몰위치에 대한 논란은 종지부를 찍었다"며 "탐사를 마무리하는 대로 소유권 등기와 본체인양을 위한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돈스코이 함의 제원과 정보


러시아 제국 해군의 장갑순양함으로 러일전쟁의 쓰시마 해전에서 패전한 발틱함대 소속의 함선 중 하나였다. 큰 손상을 입은 채 일본 해군의 추격을 받다가 1905년 5월 29일 6시 46분에 자침(스스로 침몰)시켰다. 함장 이하 생존 승조원들은 울릉도에 상륙 후 다음 날 이들을 붙잡으러 온 일본 해군들에게 무저항 항복했다.


(사진) 당시 러시아 해군 순양함이던 돈스코이함


함급은 블라디미르 모노마프급 장갑순양함이다. 블라디미르 모노마프급은 러시아 제국해군의 장갑순양함으로, 동형함이 바로 드미트리 돈스코이함이다. 19세기 러시아는 원양에 진출을 노려 대양형 순양함의 건조를 계획해 지중해 및 태평양에서의 운용을 목적으로 본급을 건조하여 1883년에 블라디미르 모노마프, 1886년에 드미트리 돈스코이를 완공하였다.


(사진) 드미트리 돈스코이 함의 설계 도면


배수량은 5,976톤이고 길이는 93.4m이다. 폭은 17.7m, 흘수 7.88m이며 추진동력으로는 샤프트 x 1개, 증기터빈 x 2개, 보일러 x 8개를 갖췄다. 속도는 16.5노트(30.6km/h)를 낼 수 있었으며 항속 거리는 10노트(19km/h)시 7,000 마일(13,000 km) 정도였다.


함포로는 8인치(230mm) 포 x 2문, 6인치(152mm) 포 x 14문이며 어뢰 발사관을 4개 갖췄다. 또한 복합장갑으로 중무장했다.



# 돈스코이 함의 명칭 유래는 어디서 왔는가?


돈스코이는 모스크바 대공국의 벨리키 크냐즈이다. 벨리키 크냐즈는 동유럽에서 불리던 기사 작위 중 '대공'의 공식 호칭이다. 이반 2세에게서 계승받았고, 바실리 1세에게 계승해주었다.


1380년 9월 8일 당시 맹위를 떨치던 몽골의 후예 킵차크 칸국의 마마이 칸과 전쟁에 돌입해 돈 강 상류에서 쿨리코보 전투에서 마마이 칸을 패퇴시키면서 기세를 떨치게 된다. 이를 계기로 드미트리 대공은 "돈 강의 드미트리"라는 뜻을 가진 드미트리 돈스코이라고 불러지기 시작했다. 


(사진) 러시아 성인 중 한명인 드미트리 돈스코이


이 전투에서의 승리로 러시아는 몽골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듯 했지만 마마이 칸을 몰아내고 킵차크 칸국의 칸이 된 토크타미쉬에 의해 모스크바가 점령되면서 독립이 좌절되었다.


드미트리 돈스코이는 목숨과 모스크바 대공 자리를 유지했으나 돈스코이의 아들은 킵차크 칸국 토크타미쉬의 인질이 되었고 엄청난 배상금을 물게 되었다. 이렇게 러시아의 영웅이다 보니 5월 19일은 러시아 정교회에서 그의 축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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